너무나 소탈해 소년 같은 얼굴을 가진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구자흥(63) 관장. 그는 19일 열린 ‘문화의날’ 시상식에서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배우나 창작자가 아닌 공연기획자가 문화훈장을 받은 건 구 관장이 처음이다. 공연기획 1세대로서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무대 뒤편만을 지켜온 그의 ‘백스테이지 스토리’는 과연 어땠을까.
#끼가 없던 엘리트 청년
구 관장은 공부를 잘했다. 서울고-서울대 미학과를 나왔다. 대학 시절엔 연극에 푹 파묻혀 지냈다. 문리대 연극회장을 했고, 서울대 연극회장도 했다. 그때부터 기획자로서 싹이 있었다. 단과대별 연극 동아리를 한데 묶어 ‘서울대 연극축전’을 만들기도 했고, 1966년엔 개교 20주년 기념 선후배 합동 공연도 마련했다. 그럼 배우로서의 자질은?
“조연은커녕 단역도 간신히 했어요. 나름 아쉬움이 있었는지 문리대 회장 끝내곤 후배 회장한테 ‘힘 한번 써주라’고 사정해서 4학년 때 주연을 맡은 게 제 연극 인생 유일한 주인공이었죠.” 구 관장은 잠시 허공을 바라봤다. “지금도 배우가 가장 부럽습니다. 전 끼가 없어서….”
졸업 후 함께 연극을 했던 동창들이 대개 현실을 택한 것과 달리, 그는 실험극장에 들어갔다. 학창 시절처럼 기획자였다. 말이 좋아 기획이지 포스터 붙이기, 보도자료 작성 및 배포, 매표 관리, 연습실 청소 등 온갖 궂은 일은 그의 몫이었다. 그래도 관객이 잘 안 오는 평일 낮 공연에 학생 단체 할인을 시도하는 등 과학적 마케팅으로 71년 공연된 ‘햄릿’이 전회 매진을 기록할 땐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안목이 있어야 하고, 트렌드를 정확히 꿰뚫어야 한다고 말은 해요. 그러나 공연기획자의 가장 큰 덕목은 연기자·연출가·스태프를 모두 신경 쓰는 ‘배려심’입니다.”
#“조명이 꺼지면 내가 주인공”
그가 공연계에서 뚜렷하게 입지를 다지게 된 것은 2000년 의정부 예술의전당 관장을 맡으면서다. 당시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던 의정부를 그는 단숨에 예술도시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취임 이듬해부터 시작된 ‘의정부음악극축제’가 돋보였다. 서울에서도 접하기 힘들던 최고 수준의 해외 연극·무용 등이 잇따라 공연돼 공연 관계자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영국·체코·프랑스·인도 등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을 해외 통신원으로 활용한 아이디어도 빛이 났다. 의정부 출신의 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천상병예술제’, 시청·기업·학교 등을 대상으로 판매한 공연상품권 등도 히트했다.
2006년부턴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일반인들의 연극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상록수 프로젝트’, 한국에선 낯설지만 수준 높은 ‘라틴 아메리카 연극제’ 등을 진행해왔다.
그는 “양궁 선수가 극기훈련하듯 연극도 눈물겹고 치열하게 연습하면 과연 지금처럼 관객의 외면을 받을까”라고 자문한단다. “관객이 다 떠난 텅빈 객석에 앉으면 나는 설렌다. 그때부터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라고도 말한다.
누구와도 불화를 일으키지 않아 ‘융합의 리더십’으로 평가받는 구 관장. 그의 넉넉함이 한국 공연계의 큰 우산으로 오래오래 남기를 많은 이들이 바라고 있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2008.10.30 (목) 오전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