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음악회에서 겪은 '질서'과 '무질서'
  • 등록일2009-01-07| 작성자 관리자

[동서남북] 음악회에서 겪은 '질서'과 '무질서'

정숙하고 교양있던 음악회 청중
다과회에선 무례한 군중으로


지난 2일 저녁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신년음악회가 열렸다. 연주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지휘자 정명훈씨가 이끄는 서울시향이 날로 발전하는 데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효과까지 겹쳐 표가 일찌감치 동났다.

그래서인지 클래식음악 애호가뿐 아니라 평소 음악회를 찾지 않는 시민이나 어린이들도 많이 보였다. 공연 분위기가 어수선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교향곡 중간에 박수를 친다든가 휴대전화가 울리고 아이들 소리가 난다든가 하는 결례도 없었다. 무대 위에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있었다면 객석에는 '서울시민교양(敎養)악단' 멤버 같은 관객들이 앉아 있었다. 한 도시를 대표하는 교향악단 연주를 예전보다 훨씬 성숙해진 시민들 사이에서 본다는 즐거움은 음악이 주는 기쁨 이상이었다.

그런데 이런 행복감은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공연이 끝나고 세종문화회관 로비에는 관객들을 위한 다과회가 특별히 마련됐다. 여러 테이블에 음식과 음료수를 차려놓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지휘자 정명훈씨가 나와 차례로 인사말을 했다.

그 자리에 남은 인파는 크게 두 부류로 갈렸다. 앞쪽에 빙 둘러선 사람들은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 오세훈 시장과 정명훈씨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사진 찍겠다고 뒤에서 떠밀고 "실례합니다"라는 말도 없이 밀치고, 비집고 들어오는 무례한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또 다른 부류, 뒤쪽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차려진 음식을 누가 먼저 먹을까 봐 얼른 챙겨 먹기 바빴다. 음식을 나르는 웨이터들이 "인사말 끝나면 드시라"고 말렸건만 역부족이었다. "시민들을 위해 마련한 것이니 남김없이 드시라"는 안내말이 나올 즈음 테이블 위는 메뚜기 떼가 쓸고 간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음악회의 감동과 여운을 나눠보자고 점잖게 서 있던 사람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야 했다.

똑같이 그 사람이 그 사람들이었는데, 숨죽여 음악회를 지켜보던 절도 있는 '시민'은 오간 데 없고, 금세 거리에서 마구 어깨 부딪치며 지나가는 낯 두껍고 무례한 '군중'으로 돌변해 버렸다. 공연장에서 음악과 소통하던 문화 주체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유명인 사진 찍고 먹는 것 극성스럽게 챙기느라 질서도 뒷전인 문화 객체들만 남았다.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음식점에서, 우리 사회 어디서나 만연한 무질서와 전투적인 무례함의 낯익은 되풀이였다.

독일의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Elias)는 1939년 펴낸 저서 '문명화 과정'에서 봉건제도가 해체되고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사회 발전 단계에서 개인이 '문명화'되는 과정을 추적했다. 사적(私的) 폭력이 국가의 공적 폭력으로 대체되면서 개인들은 욕구와 본능을 통제하고 수치심의 수위를 높여가며 교양과 예절을 익혀 상호 공존의 사적 평화를 구축한 역사다.

엘리아스의 시각을 빌리자면 이날의 공연장 안팎은 '문명과 야만'의 극명한 대비였다. 공연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차분하고 절제된 어법과 태도로 소통하는 법, 다른 이에 귀 기울이는 문명화된 태도를 학습하고, 보여줬다.

그런데 객석의 '서울시민교양악단'이라 치켜세우고 싶던 시민의식은 음악회장이라는 아주 한정된 공간, 제한된 시간 동안만 머물러 있다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곧바로 무질서 모드로 들어섰다. 그게 우리 사회의 현 주소요, 한계다.

이날 공연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음악'은 불과 3년 만에 눈부시게 발전했다. 지난 2005년 법인화 이후 세계적인 지휘자와 참신한 경영인을 영입, 경영 혁신과 음악적 쇄신을 이룬 덕분이다. 서울시민교양악단의 '교양(敎養)'은 과연 어떤 방법을 써야 그런 도약이 가능할까?


[조선일보] 2009.01.07 00:53/강경희 경제부 차장 대우
khk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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