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일보]불황에 문화·공연은 그림의떡? 찾아봐, 공짜·할인 이벤트
  • 등록일2009-01-16| 작성자 관리자

불황에 문화·공연은 그림의떡? 찾아봐, 공짜·할인 이벤트
"이게 웬 떡!" 만족 100%


 
 

문화 행사는 많고 공짜와 할인 행사도 많다. 짠순이 정신으로 1주일 동안의 문화 사냥에 나선 대학생 이은규씨가 여러 공연 티켓을 들고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을 찾았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삭풍이 가슴을 파고든다. 경제 불황이라고 다들 어두운 표정이다. 만사 제치고 살아 남는 게 최고라는 이 삭막한 시기, 문화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 봐라. 역경을 이겨낸 힘은 항상 문화였다.

쿠바혁명이라는 절대 불가능의 꿈에 도전했던 피델 카스트로의 군복바지 주머니에는 항상 문학책이 꽂혀있었다는 사실, 들어보지 않았나. 그래도 역시나 돈이 문제다.

문화는 즐기고 싶고 돈은 아끼고 싶은 짠돌이, 짠순이들을 대신해 대학생 이은규(22ㆍ이화여대 방송영상학과3)씨가 각종 문화 이벤트에 도전했다. 그의 1주여일을 재구성했다.

나는 귀차니스트다. 누구는 할인카드다 적립카드다 바리바리 챙겨서 싸게 문화를 즐긴다는데 난 돈이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한 웬만한 이벤트는 거들떠 보지 않는다. 뭐, 좋아하는 한 영화주간지 홈페이지를 통해 영화 시사회 응모를 곧잘 하긴 했다. 그러나 문화 이벤트에 대해선 유난히 부산 떠는 여느 깍쟁이 친구들에 비할까.

그런데… 요즘 너무 춥다. 지갑도 부피가 꽤 줄었다. 따끈한 우동 국물 같은 연극 한 편이 더욱 그립다. 한 달에 최소 영화 2,3편은 봐야 직성이 풀렸던 자칭 문화애호가가 불황만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 한 번 나도 도전해보자. 알짜 가격도 좋고 공짜라면 더욱 좋다. 주머니가 가벼워도 즐길 수 있는 알찬 영화와 공연과 전시를 찾아보자.

작심하고 나섰지만 익숙지 않아서일까. 첫날(7일)은 꽤 헤맸다. 어디서 어떤 문화행사를 찾아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오전 8시 45분 영어학원 수강으로 시작해 밤 10시 자습으로 끝나는 하루하루에 몸이 지쳐서 더 그런 걸까. 인터넷 검색 중 문득 눈이 번쩍 뜨였다.

문화정보의 보물창고를 찾았다. 인터넷포털 네이버의 카페 '문화충전 200%'. 각종 영화 시사 이벤트는 기본이며 연극, 뮤지컬, 미술전시회 등 공짜나 할인 문화행사에 대한 정보가 가득했다. 정보가 너무 많아 번거로운 게 오히려 단점일 정도.

둘째 날 '문화 사냥'에 본격 나섰다. 영화주간지 씨네21 홈페이지를 통해 영화 '작전명 발키리'와 '레저베이션 로드', '티스', '버터플라이'의 시사회에 연달아 응모했다. 좋아하는 인디밴드 '보드카 레인'의 공연을 보기 위해 EBS의 스페이스공감 행사도 응모했다.

여기에 하나 더. 서울메트로가 진행하는 영화 '워낭소리'와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 관람 이벤트에도 참여했다. 서울메트로는 지하철역 위주의 생활밀착형 공연만 하는 줄 알았더니 이런 근사할 행사도 할 줄이야. 남들은 모르는 비밀 창고를 발견한 듯한 느낌!

셋째 날 휴대폰으로 낭보가 전해졌다. '버터플라이'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된 것이다. 사실 아주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짜가 아닌가. 하지만 실망도 함께한 하루. 시사회 이벤트가 많기로 유명한 'TTL시네마' 사이트를 알게 돼 급히 접속했지만 이번 주 신청은 모두 마감됐다.

넷째 날. 1,000원으로 국내 유명 연주자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세종문화회관 '천원의 행복' 이벤트에 응모하려 했으나 또 신청 마감. 대신 평소 말로만 들었던 서울 세종로 KT아트홀의 '천원의 나눔' 공연을 예매했다. 근사한 재즈 공연을 단돈 1,000원에 즐길 수 있다는 기대를 위안으로 삼은 하루다.

일요일인 다섯째 날, 힘겨운 1주 때문인지 귀차니즘 전격 발동. 여섯째 날은 '버터플라이' 시사회에 만족하며 하루를 보냈다.

일곱째 날은 무료 전시회 보기에 나섰다. 서교동에 있는 KT&G 상상마당 전시관을 먼저 찾아 국내 현대미술가 나현의 개인전 '실종(Missing)'전을 관람했다. 이어서 찾은 곳이 순화동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조우:더블린, 리스본, 홍콩 그리고 서울'이라 명명한 현대미술국제교류전을 봤다.

이런 좋은 작품들을 공짜로 볼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더군다나 영상실에선 미셸 공드리 감독의 '수면의 과학' 무료 상영회까지 하고 있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선입견과 그동안의 게으름에 대한 핑계를 저 멀리 날리게 된 날.

그리고 마지막날인 15일. KT아트홀에서 이한진 밴드의 공연을 즐겼다. 좋았냐고? 1,000원의 몇 수십 배에 달하는 만족감, 경험한 사람만이 알 것이다.


[한국일보]2009/01/16 06:09:36/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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