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우리 엄마, 빅뱅 공연 보러 갔다 우리 아빠, 오늘도 '건담' 만든다
  • 등록일2009-03-27| 작성자 관리자

우리 엄마, 빅뱅 공연 보러 갔다 우리 아빠, 오늘도 '건담' 만든다

어린시절로 돌아간 중장년층 세대…
불황에 불안한 사회 포근함 그리워 해


올해 43세 주부 겸 프리랜서 정모씨. 그는 2004년부터 해외여행을 40여 차례 다녀왔다. 일본 20회, 중국 6회, 태국 3회…. 모두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의 해외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한 것이었다. "학창 시절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조용필 콘서트를 본 것이 연예인에 대한 관심의 전부"였다는 그는 "동방신기 데뷔 직후부터 유노윤호의 팬이 됐다"고 했다. 그는 30~40대로 이뤄진 유노윤호 '서포터즈'를 이끌고 국내 방송사의 동방신기 공개 녹화도 일일이 찾아다닌다. "사회생활에 치여 젊은 날의 열정을 잃어가고 있는데 치열하게 사는 윤호를 보면서 다시 힘을 얻었어요. 그 애를 보면…, 그냥, 행복감을 느껴요."

한나라당은 지난달 20일 드라마 '꽃보다 남자' 속 꽃미남 고교생 그룹 F4의 얼굴에 소속 국회의원 사진을 붙인 뒤, 정책을 소개하는 패러디 게시물을 올렸다. 네티즌의 관심이 폭주했다.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얼굴에는 주름 가득한 의원들은 교복 차림으로 'F4' 대신 'H4'라고 외쳤다.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물인 이 드라마의 주시청층은 여자 30~40대. 41.4%나 된다. 10대(31.5%), 20대(20.7%) 못지않다. 30~40대 남성 시청률도 18.2%. 20대 4.6%와 비교하면 압도적 수치다.

요즘 중장년층이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미소년·미소녀가 등장하는 드라마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고 피규어·프라모델 등 유년 시절 즐겨 찾던 장난감을 앞다퉈 사들인다.

전문가들은 "경제가 불황이고 사회가 불안하다 보니 아늑하고 안정됐던 유년 시절을 그리워하는 심리가 확산돼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 중장년 팬들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로이터
 
요즘 히트곡 '지(Gee)'로 큰 인기를 얻었던 여성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 이들은 30~40대 위주로 구성된 성인 팬클럽 '소시당'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 회원 수는 700여명. 이 클럽 초대 '총재'이자 대학원생인 정재민(35)씨는 "처음에는 '나이 들어 뭐 하는 거냐? 변태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는데 지금은 확실하게 인정받고 있다"며 "요즘 30~40대들은 점잖은 척하는 데 별 관심이 없는 데다 사회생활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 곳이 마땅치 않아 소녀 그룹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지난 2월 열린 동방신기 콘서트 예매자의 연령대는 10대가 32.35%인 반면, 20대가 35.03%, 30대가 12.7%, 40대 이상이 20.02%. 빅뱅의 경우도 비슷하다. 콘서트 판매를 대행한 G마켓에 따르면, 10대는 20.9%였지만 20대 29.7%, 30대 11.4%, 40대 이상은 37.1%였다.

빅뱅 소속사인 YG엔터테인먼트의 박성미 팬 커뮤니티팀장은 "콘서트 현장에는 구매력이 좋은 20~40대 직장인이 전체 관객의 40% 이상"이라며 "야광봉 흔들며 온몸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면 10대들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경기는 지속적인 불황이지만 중장년들은 피규어·프라모델 등 점점 많은 장난감을 사들이고 있다. G마켓에 따르면, 2007년 10월 850여개쯤 판매되던 피규어 제품은 지난 2월 2900여개나 팔려나갔다. 3배 이상 증가한 수치. 프라모델 제품도 2008년 1월 1120여개에서 2009년 2월 2500여개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현재 피규어·프라모델 제품 매출 중 30%는 30~40대 남성 고객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G마켓의 분석. G마켓 스포츠레저팀 심영근 과장은 "치열한 경쟁 구도 사회에서 유년 시절의 향수를 통해 위안을 찾으려는 30~40대 남성들이 건담, 태권V 등을 열심히 사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학창 시절 MT를 연상시키거나 연예인들의 아이 같은 장난질이 대부분인 오락 프로그램에 중장년이 열광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1박2일'과 '무한도전'의 10대 시청률은 각각 16.9%, 13.1%에 불과하지만 30대 시청률은 39%, 19.5%, 40대 시청률은 38.5%, 16.7%에 달했다. 성신여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는 "불황기의 특성 중 하나가 노스탤지어로 사회적으로 위기가 오면 정체성이 흔들리는 개인들이 안정된 유년기를 그리워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성인들 같은 고뇌와 갈등이 없어 보이는 TV 속 미소년·미소녀들을 보고 무작정 부러워하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선일보]2009.03.27 02:42/최승현 기자
vaida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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