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부터 창무국제예술제 여는 한국무용계의 대모 김매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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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창전동 사무실 벽엔 ‘네 덕 내 탓’, ‘몸’이라는 글자가 쓰여진 액자가 나란히 걸려있다. 김매자 창무예술원 이사장은 “무대에서, 또 무대 밖에서 여기까지 나를 끌고 온 원동력”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송원영 기자 |
나이를 잊은 지 오래다. 서울 창전동 창무예술원 사무실에서 한국무용의 대모 김매자(66·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창무예술원 이사장을 만났다.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르고 지낸 지 한참 됐다”고 말을 꺼낸 그는 “인터뷰까지는 괜찮은데 촬영은 부담스럽다”며 웃었다.
“그냥 있을 때는 모르겠는데 사진을 찍으면 어김없이 표가 나요. 주름 하나하나가 너무 선명해서 시간이 이렇게 흘렀구나 느끼죠. 이젠 일을 벌일 때가 아니라 정리할 때라고 가르쳐준다니까요.”현실에서도 세월의 무게가 드러났다. 경제난으로 1993년부터 끌고 온 ‘창무국제예술제’를 2007년 14회를 끝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 창무예술원 사무실도 도로변에서 주택가 쪽으로 옮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증을 섰던 게 문제가 돼 집까지 내놓아야 했다. 이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폭풍이 지나갈 무렵,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다. 의정부예술의전당 이진배 사장이었다."창무국제예술제를 다시 하자고 하더라고요. 해외 예술단체와 네트워크를 쌓아놓은 게 있어서 국제예술제 예술감독을 맡아 달라나 싶었죠. 너무 지쳐 있어서 안 하려고 했어요. 창무국제예술제를 그대로 이어가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게 없어지기엔 이제껏 해놓은 게 아깝다는 거죠. 감사하기도 하고 창무의 역사가 엉터리는 아니었구나 생각에 울컥했어요.”
민간 춤 축제로서는 처음으로 국제무대의 장을 연 예술제다. 부랴부랴 살림을 다시 꾸렸다. 21∼30일 의정부예술의전당에 터가 마련됐다. ‘다색화(多色和)’를 주제로 전통 춤에서 멀티미디어가 결합된 춤까지 7개국 24개팀을 무대로 불러들였다. 티켓 가격도 1만∼2만원으로 대폭 낮췄다. 예술제 이야기가 나오자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억지로 하지는 말자’는 신조가 이번에도 힘을 발휘했다”고 했다.
“일을 벌일 때 욕심을 내진 않아요. 뭔가 일부러 하려고 하면 부작용이 있더라고요.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 같아요. 흘러오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도 있잖아요.”
춤에 빠져 흘러온 지 55년이다. 전통 춤은 뻔하다는 편견이 싫어 1976년 ‘창무회’를 만들어 새로운 춤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여기까지 왔다. 1985년엔 국내 처음으로 무용전용소극장 창무춤터를 개관해 춤과 시를 비롯해 미술, 영상, 연극 등 타 장르와 만나는 무대도 시도했다. 7년 뒤 서울 창전동 포스트극장 시대를 열고, 무용 월간지 ‘몸’ 발행을 시작하면서 한국 무용의 텃밭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살았다. 2006년에는 프랑스 현대무용의 대가 카롤린 칼송과 공동 작업한 ‘느린 달’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무대는 그에게 열려있다.“단원들과 연습을 같이하는데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늘 자신한테 물어보죠. 기본연습은 똑같이 해요. 아직은 괜찮구나 싶죠. 건강엔 욕심을 내는 편이라 헬스와 연습은 아무리 바빠도 빠뜨리지 않아요.”
무대는 늘 욕심 나는 곳이지만 그보다 더 큰 바람이 있다. 전통을 이어가는 것. 우리만의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승해 나가는 게 최종 목표다.
“뿌리를 내리고 싶어요. 중국엔 경극이 있고, 일본엔 가부키·노가 형태를 이어오고 있잖아요. 시대에 맞게 변화는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바탕은 이어오고 있잖아요. 우리 춤의 매력은 에너지요. 굿에 대해 한창 연구하고 배우면서 우리 춤의 맛을 알았죠. 살풀이, 부채춤하고 또 다른 맛이에요. 굿 안엔 노래, 연기, 대사, 춤이 다 있죠. 그 에너지를 제 춤에 가져오려고 노력했어요.”우리 춤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다. 창무국제예술제는 세계 각국의 무용을 소개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 춤을 재조명하는 것에도 의미를 둔다. “국내외 공연별 가격차를 두지 않았다”는 그는 “해외 단체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국내 단체의 역량을 티켓 가격에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팀 초청만큼이나 국내 단체 무대에도 신경을 썼다.
“춤은 삶이죠. 평생 같이해도 싫증 한 번 난 적이 없어요. 그 매력을 보여드리고 싶은 축제예요. 어떤 무대를 골라도 깊이 있는 맛을 느낄 수 있도록 꾸몄어요.”
‘전통춤 명인전’을 시작으로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독일 폴란드 등에서 주목받고 있는 안무가·단체 무대를 거쳐 디지털을 춤의 세계로 끌어들인 호주 잼버드(jambird)의 ‘메타댄스’로 끝을 맺는 여정이다. 다시 시작된 예술제로 그의 여정도 바빠졌다. 그 ‘바쁨’이 반갑기만 하다. 춤에 대한 사랑을 다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란다. 기쁨은 말에도 묻어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말들이 덩실거렸다. 윤성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