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게 바로 원작의 힘이에요. 희한하게도 ‘고도’는 할 때마다 마치 새 작품을 만난 듯한 신선함과 긴장감을 줍니다. 매번 ‘아, 이게 이런 의미였구나’새롭게 깨달아요. 그런 게 없다면 40년이나 못 했겠지요. 사실 ‘고도’는 연출자와 배우에게 아주 불친절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숨은 그림찾기 하듯 행간의 뜻을 하나하나 깨달으면서 느끼는 성취감은 다른 작품에 비할 바가 아니지요. →초연 때부터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사무엘 베케트의 원작 그대로 공연하시는 걸로 유명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원칙적으로 원작을 존중하자는 게 내 신념이에요. 작가가 괜히 대사 쓰고, 디렉션(지문)을 쓰는 게 아니니까요. 또 하나는, ‘고도’가 함부로 손대면 틀 자체가 무너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치밀한 구성의 작품이기 때문이에요. 한번은 공연 시간을 좀 줄이자는 의견이 있어서 평론가들한테 어딜 자르면 좋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다들 고개를 젓더군요. →무대나 소품 등도 바뀌지 않았나요. -딱 하나 바뀐 게 있어요. 나무 한 그루가 유일한 무대세트인데 그 형태가 변했어요. 원래는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길쭉한 나무였는데 1989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공연 때부터 소나무 분재에서 힌트를 얻어 S자로 구부러진 모양을 쓰고 있어요. 어느 외국 평론가가 물음표 같다고 평하기도 했는데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 아닙니다.(웃음) →원작자의 고향인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도 두 차례 공연하셨지요. -1990년 더블린연극제에 초청받았고, 지난해 한국·아일랜드 수교 25주년 기념으로 더블린 베케트센터에서 공연했습니다. 원작자의 이름을 딴 극장에서 공연할 수 있었다는 건 연출자로서 대단한 영광이지요. 한가지 아쉬운 건 1989년 7월에 더블린연극제 초청을 받았는데 그해 11월에 베케트가 사망한 것이에요. ‘내년이면 베케트가 내 공연을 볼 수도 있겠구나’기대가 컸었는데 참 안타까웠지요. 지금도 ‘만약 그때 베케트가 내 작품을 봤다면 뭐라고 얘기했을까’ 무척 궁금합니다. →세월에 따라 관객의 반응도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초기엔 ‘고도’가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요즘은 그런 질문은 안 해요. 촌스럽다고 생각해서인지(웃음). 대신 ‘당신이 생각하는 고도는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데, 일찍이 베케트가 말한 명답이 있어요. 미국 초연 때 연출가가 작가에게 편지를 보내서 고도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베케트가 그랬대요. ‘내가 그걸 알면 작품에 왜 안 썼겠느냐’고. 두가지 의미라고 생각해요. 하나는 연출이 스스로 알아서 찾으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연출과 배우, 관객이 저마다 생각하는 고도가 다르다는 의미지요. 올해 일흔다섯인 임 연출은 지금도 한해 두 세 작품을 공연할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는 18일엔 명동예술극장에서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를 무대에 올린다. “나이에 비해 작업을 많이 해서 내년부터는 일을 좀 줄일 생각”이라는 임 연출은 “그래도 ‘고도’는 연출할 기력이 남아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손형준기자 boltagoo@seo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