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여적]고도를 기다리며
  • 등록일2009-09-08| 작성자 관리자


[여적]고도를 기다리며


 
   

앙상한 가지뿐인 나무 한 그루가 무대 중앙에 서 있다. 이렇다할 장치가 없는 썰렁한 공간.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처럼 휑뎅그렁한 무대에서 막이 오른다. 두 배우가 등장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다.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종잡기 어려운 대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연극은 오직 ‘고도를 기다린다’는 메시지만을 반복한다.

‘대체 고도는 누구인가. 그들은 왜 무엇 때문에 기다리는가. 이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외마디 말로 주고받는 난삽한 대화, 대체 이것은 연극이기라도 한 것인가.’ 이어령 전 교수는 의문문으로 이어지는 평을 내기도 했다.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 초연 당시 연출자가 “고도는 누구인가”라고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며 설명을 피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이 난해한 부조리극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이가 연출가 임영웅이다. 그는 연극과 함께 외길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위기의 여자>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 100여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1966년 국내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 가수 패티김을 출연시키는 등 파격적 연출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인물이다. <살짜기 옵서예>가 초연된 10월26일이 ‘뮤지컬의 날’로 정해진 것도 그의 작품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연극인생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작품을 고른다면 <고도를 기다리며>일 것이다. 1969년 이 연극을 선보인 이후 20번이나 연출을 맡았고, 한국 극단으로는 처음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해 세계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임영웅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된 지 40년을 맞았다. 그동안 1114회의 무대가 꾸며졌고 누적 관객만 2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초연의 김성옥·함현진·김무생·김인태 등을 비롯, 전무송·주호성·조명남·김진동 등 기라성 같은 국내 배우들이 이 연극을 거쳐갔다.

한 연출가가 같은 작품을 40년간 재해석하며 무대에 올린 것은 연극사에 남을 일이다. “다른 활동을 접더라도 끝까지 하고 싶은 작품”이라는 노 연출가의 말 속에서 한 연극인의 집념과 예술혼을 읽는다.

<박성수 논설위원>


[경향신문]2009-09-06 18:15:20/박성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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