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기사 게재 일자 2007-05-03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불`
노을도 빛나고
그 너의 눈도 빛나고…
반짝이는 별이
잘사는 사람들의 꿈속에서 빛나고
아득한 전설이
먼 산과 바다에 빛나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만이,
세계의 끝과 끝에 퍼지는 빛만이
외로운 사람들의 가슴속에 빛나고…
너와 나는 그 불을 한아름 안고
내일로 가자 내일로 가자.
‘귀천’의 시인 천상병(1930~1993)의 초기작에 해당하는 1950년대 시 4편과 1편의 평론, 마산중학교 교지에 선배로서 쓴 편지글 등이 새롭게 발굴됐다.
문학평론가 고영직(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씨는 2일 펴낸 ‘천상병 평론’(도서출판 답게)에 6·25 전쟁이 끝나지 않았던 1952년 동인지 ‘제2처녀지’에 발표했던 ‘별’과 ‘미광(微光)’, 1956년 ‘협동54호’란 잡지에 게재했던 ‘바다로 가는 길’, 같은 해 ‘소년동아’에 실린 ‘불’ 등 천상병 시인의 4편의 시를 새롭게 발굴해 싣고 있다.
천 시인은 1950년에 평론가로 등단했다. 이번에 발굴된 시와 글들은 그가 부산과 마산을 오가며 동인활동을 할 당시의 것들로 아직 중앙문단에는 이름을 알리지 않았던 때 쓴 것이다. 이번 시들은 50년대 초반 그것도 전시에 발표된 것이라고는 믿지 못할 정도로 반짝이는 현대적 감성이 돋보인다. 당시 대다수 문인들이 소위 ‘잿더미 의식’에 사로잡혀 ‘허무’‘폐허’ 등의 정서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그의 초기작은 ‘내일’과 ‘등대’ 등 희망을 내다보는 시어들로 가득차 있어 놀라울 정도다.
‘등대에 불이 켜진다. 바다로 향하여. 하늘은/ 무수한 갈매기떼처럼 가버리었다./ 그 수평선을 가는 것은 항해하는 상선(商船)이 아니고/ 내일의 나의 내일의 항구(港口) 별이여.’(‘별’ 전문)
‘사월은 풀벌레들이 울기 시작한다. 작년에 죽은 귀뚜라미도 갸냘픈 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밤에만 우는 풀벌레소리로 나는 외로워져 간다. 외로워져 간다는 것은 나도 그런 풀벌레 소리를 하고 싶다는 것인가. 가만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우린다는 것인가.’(‘미광’ 전문)
평론가 고씨는 ‘천 시인은 문학적 허무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문학을 어떻게 취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질식할 것만 같은 현실이지만 이를 벗어나려는 의지가 맑게 읽힌다’고 평가했다.
‘한줄기 지평(地平)의 거리(距離)는,/ 산에서 또 다른 산을 향한,/ 하늘의 푸른 손이었습니다.// 불가항(不可抗)의 그 손에 잡힌 산산(山山)의 호수에/ 언제 새로운 소식(消息)이 있어,/ 들판 위에는 무수한 길이/ 실로, 무수한 길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내일 나는 바다로 가자.’(‘바다로 가는 길’ 전문)
‘노을도 빛나고/ 그 너의 눈도 빛나고…// 반짝이는 별이/ 잘사는 사람들의 꿈속에서 빛나고// 아득한 전설이/ 먼 산과 바다에 빛나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만이,/ 세계의 끝과 끝에 퍼지는 빛만이/ 외로운 사람들의 가슴속에 빛나고…// 너와 나는 그 불을 한아름 안고/ 내일로 가자 내일로 가자.’(‘불’ 전문)
고씨는 ‘대개 시인들의 연구에서 초기 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천 시인의 경우 동백림 사건 이후 삶과 문학에서 일대변화를 맞았기 때문에 이번에 발견된 초기 시가 더욱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발굴된 평론은 역시 동인지 ‘제2처녀지’에 발표한 ‘인간상의 새로운 성(城)’이란 글로, 자신이 문학의 길로 들어선 이유를 말하고 있다.
엄주엽기자 ejyeob@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7-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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