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삶과 꿈(Life & Dream) July 2007 Vol.276/글:김문환(서울대교수,연극평론가)
독창적인 1인 음악극
`조지 거쉬인 얼론`과 `무슈 쇼팽`
2004년 4월,국제 교류단의 후원으로 이애주 교수와 함께 미국 6개 대학 순회강연에 나선 적이 있다.
한국전통공연예술이 주제였다. 대체로 한 지역에서 3~4일 머물렀는데. 강연이 끝난 후 우리는 극장을 찾아 여러 차례 미국 연극의 현장을 확인하곤 했다. 첫 강연회가 있던 시카고의 로욜라대학을 방문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신문을 뒤져 공연 란을 찾아 상연되고 있는공연 목록을 짚어가던 중 `조지 거쉬인 얼론`(허쉬 펠더 작, 조엘 즈윅 연출) 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블루맨`이라는 제목도 눈에 뛰었다. `블루맨` 은 워낙 유명한 공연이라 이미 매진된 상태인지라, 우리는 거쉬인 쪽을 선택하면서도 이를 소재로 1인극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지 굼금하기 짝이 없었다.
로얄 조지 극장에 들어섰을 때, 우리의 호기심은 더욱 발동했다. 좌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관객들의 대부분이 백인 여성들로서, 평균연령은 60대 이상으로 보였다. 거쉬인이라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포기와 베스`나 `랩소디 인 블루`가 그렇듯이 흑인음악에서 유래한 재즈 음악가로만 알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프로그램을 읽어보면서 호기심은 더욱 강해졌다. 작가와 연기자의 이름이 모두 허쉬 펠더였고, 그가 연주도 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무슈 쇼팽
작품의 제목인 <조지 거쉬인 얼론>은 그가 삶에서 다른 모든 것은 배제한 채 음악에만 충실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결국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다는 점을 들어냅니다. 물론 이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수 많은 댄서들이 나오는 화려한 작품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한 위대한 작곡가와의 친밀한 교감을 얻기 위해 오는 것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막이 열리면서 아름다운 커튼과 피아노를 중심으로 좌우에 의자와 램프를 배치한 간단한 장치면서도 극 진행에 따라 영상을 통해 각종 장면이 비쳐지면서 허쉬 펠더라는 출연자가 거쉬인의 생애를 연기하는데, 이어지는 피아노 연주도 가위 톱클래스이다.
1828년 9월 26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러시아계 유태인 이민자 부모 밑에 태어나 1937년 7월 11일, 뇌암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기까지 39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간 이 미국 작곡가의 생애가 그야말로 군더더기 없이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펠더는 하버드대 상주음악학자의 칭호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을 쓰기 위해 5년간의 세월을 투자했다 한다. 그는 거쉬인의 개인적인 서신들, 작품 원본, 개인 소지품들을 점검하는 한편, 거쉬인의 친지들, 전기 작가들, 지인들을 면담했다. 그리고, 거쉬인의 작품들을 활용하기 위해 저작권 사용 허락을 받아냈다.
그는 왜 거쉬인에 대해 이토록 관심을 기울인 것일까?
그의 용모가 거쉬인과 비슷하다는 이유도 혹시 작용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홀로코스트 생존자 가족들 중 하나라는 자의식이 좀더 강력하게 작용했다고 밝힌다. 그의 어머니는 헝가리 태생이고 아버지는 폴란드인으로서, 두 사람 모두 가까스로 홀로코스트에서 탈출했던 것이다.
그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설립한 쇼아재단의 홀로코스트 프로젝트을 위해 생존자들과 인터뷰를하게 되었을 때 조지 거쉬인과 홀로코스트 사건이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고 한다. 그가 인터뷰한 생존자들 중 하나가 미국인 병사들에게 자신이 아는 유일한 미국음악 `랩소디 인 블루`를 휘파람으로 불러주었고 그로 인해 묵숨을 건졌노라는 이야기를 듣게 됨으로써 쇼팽, 베토벤, 모차르트,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에 좀더 관심을 갖고 있던 10대 시절에 한 피아니스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거쉬인의 의미가 그에게 더욱 크게 부각된 셈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자신이 후세에 전설로 남게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없었던 거쉬인에 대한 일종의 추모작품이라는 취지에서 펠더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설명한다.
"작품의 제목인 `조지 거쉬인 얼론`(George Gershwin Alone)은 그가 삶에서 다른 모든 것은 배제한 채 음악에만 충실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결국 자신을 외롭게 만들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물론 이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수많은 댄서들이 나오는 화려한 작품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한 위대한 작곡가와의 친밀한 교감을 얻기 위해 오는 것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그는 거쉬인과 비슷한 발성을 위해 거쉬인의 음성이 담긴 라디오 테이프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듣는 열성을 기울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이 작품은 이내 화제작이 되었는데, 여기에는 그의 작가와 배우로서의 열량뿐만 아니라, 연주자로서의 뛰어난 기량이 크게 작용했다. `토킹 브로드웨이`라는 신문은 다음과 같은 평을 게재했다.
"펠더는 대단한 콘서트 피아니스트다. 그래서 이 공연에서 다른 일반 배우들처럼 거짓으로 피아노 치는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까다롭기 그지없는 거쉬인의 곡을 모두 훌륭하게 연주해 낸다. 한 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은 아무리 거쉬인이 일찍 세상을 떴다고 해도 그의 삶을 다 드러내기에 역부족이다. 그러나 펠더의 극본은 많은 부분을 보여 주었다."
그의 연기에는 노래 또한 포함되는데,`워싱턴 포스트`의 평은 이 부분을 놓치지 않고 있다. "가수로서 그는 아이라 거쉬인(조지의 형으로서, 조지의 곡 대부분의 가사를 썼다.)이 쓴 섬세한 가사들을 위해 듣기 좋은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관객이 앙코르를 외치자 그는 관객들이 직접 뽑은 거쉬인의 곡들을 관객들과 함께 불렀다. 정말이지 잊을 수 없는 밤이었고, 위대한 미국 작곡가에게 바친 최고의 경의였다."
우리가 관람한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관객을은 그의 목소리를 즐기는 한편, 서슴치 않고 그의 요청에 따라 거쉬인의 노래를 불러댔다. 60대 이상의 백인 여성들, 그것도 유산계급으로 보이는 관객들 사이에서 거쉬인이 이토록 사랑받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우리 일행은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귀국 후 즉시 의정부 예술의전당 구자흥 관장에게 이 작품을, 아니 펠더를 초청하도록 권유했고, 그는 이를 즉시 실행에 옮기었다. 그러나 출연료 문제로 성사가 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섭섭해 하던 중, 2006년도 음악극 페스티벌에 그가 두 작품이나 들고 올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중국에 다녀와야 하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귀국 다음날 저녁에 집사람과 함께 `조지 거쉬인 얼론`과 짝을 이루는 `무슈 쇼팽`공연을 보러 의정부로 달려갔다.
시간을 잘못 알아 7시 30분에 맞추느라 저녁도 변변히 챙기지 못한 채 8시 개막을 기다리는데, 좀체 막이 열리지 않아 조금 부화가 나서 휘파람을 불까, 손뼉을 칠까 하는 중에 객석사이로 그가 등장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직전에 조르주 상드와 오랜만에 상면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시간이 지체되었다는 설정이었다. 극장은 삽시간에 그에게서 레슨을 받고자 하는 폴란드 출신의 파리 유학생들을 위한 교습 장소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펠더의 발성이 완전히 폴란드식 억양으로 바뀌었는데, 쇼팽의 조국이 폴란드이고 그를 연기하는 펠더의 부친이 폴라드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도, 그의 변신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욕망이라는 전차`에서 보이듯이, 폴란드 이민은 미국에서 대체로 야만스러운 존재로 묘사되는데, 폴란드식 억양은 그와 같은 편견을 드러낼 때 흔히 구사된다. 그러나 이 공연에서 쇼팽은 자신의 조국과 그곳에서 사랑받는 음악들이 귀족적임을 자랑하면서, 강한 폴란드식 억양을 구사한다.
예상했던 대로 작품에서 조르주 상드와의 관계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내가 일본에서 본 `조르드 상드`라는 공연은 아예 조르주 상드가 무대 위에 등장하여 그녀의 애인었던 고문변호사와 편지를 통해 쇼팽을 묘사하고, 중앙에 놓인 피아노에서는 연주자가 쇼팽의 곡들을 연주했는데(이 작품 역시 페스티벌 앙상블에 의헤 한국에서 공연된 바 있다), `무슈 쇼팽`쪽이 좀더 실감난다.
쇼팽은 1810년 폴란드 바르샤바 근처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폴라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미 어린 시절에 명성을 얻고 파리로 옮긴 후 1836년에 6년 연상인 조르주 상드를 만난다. 이 작품에서 쇼팽은 후에 그녀로부터 버림받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쇼팽은 1848년 파리에서 39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역시 작품을 쓰고 연기와 연주를 해낸 펠더는 특히 쇼팽의 곡들을 해설하면서 파리의 사교계에 대한 그의 풍자적 기분을 활용하여 객석으로부터 웃음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공연 후에 이어진 뒷풀이가 1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뒤에 공연된 `조지 거쉬인 얼론`의 뒷풀이에 비해 호응도가 높았던 것은 우리나라 관객들의 취향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닐까?
펠더는 이제 이와 같은 연작의 일환으로 `베토벤`을 구상 중에 있다 한다. 그 공연 역시 국내에서든, 외국에서든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순회공연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무대미술이 시카고 공연에 비해 너무 허술해 보였고, 영상처리도 희미하여 불만스러웠다(사진은 시카고 공연이 끝난 후 무대를 몰래 찍은 것이다). `조지 거쉬인 얼론` 뒤풀이 때 캐나다 쾨벡 몬트리올 출신인 그가 캐나다의 전 수상인 킴 캠벨 여사와 결혼한 사실을 넌지시 빗대어 그들 사이가 혹시 쇼팽과 조르주 상드와의 관계와 비슷한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큰 제스처로 절대 아니라고 응대하던 모습이 가끔 떠올라 혼자 실소하곤 한다. 객석 뒤쪽에 그 부인이 앉아 있는 것을, 아차, 전혀 알지 못해 나는 그만 본의 아니게 결례를 범한 격이 된 셈이다.
어쨌거나 여러 가지 의미에서 독창적인 이 공연을 나 자신의 추천에 의해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에 해복감과 자부심을 느끼면서, 즐거운 기분으로 이 글을 마감한다.
[Life & Dream]July 2007 Vol.276
글 : 김문환(서울대교수,연극평론가)
사진 :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