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5-04-22 22:00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소설가 이외수,`귀천` 한 천상병 시인이 그리워 …

[중앙일보 정재숙.김경빈] 1980년대 한국 사회에 `도적놈` 셋이 있었다. 시 쓰는 천상병(1930~93), 그림으로 도 닦는 중광 스님(1934~2002), 소설가 이외수(59)씨다.
기인열전(奇人列傳)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세 인물은 서로 외로운 것을 알아보고 함께 세월을 도적질하며 술병깨나 축내고 살았다. 12년 전 천 시인이 이승에서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나라로 돌아가고, 3년 전 `걸레 스님` 중광 마저"괜히 왔다 간다"며 붓을 접자 이외수씨는 먼저 간 두 사람을 그리워하며 홀로 놀았다.
"천 시인이 저를 각별하게 아껴주셨어요. 돌아가시고 나서도 챙겨주시네요." 천상병 예술제가 열리는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외수씨는 도인 같은 긴 머리에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천 시인이 남긴 작품에 그림을 붙인 시화와 묵화를 선보이는 특별전 `붓으로 낚아챈 영혼`을 준비하면서 그는 중광 스님의 말을 떠올렸다고 했다. "글을 통해 도에 이른 이는 천상병밖에 없어. 100년 가도 그런 시인은 안 나올 거야. 전기 고문을 세 번씩이나 당하고도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한 사람 아닌가."
이씨는 천 시인의 시를 원고지 그림으로 풀었다. 나무 젓가락으로 투박하게 쓴 시 <귀천> <갈대> <국화꽃> 옆에 원고지를 갖가지 모양으로 오려 붙였다. 누렇게 바랜 원고지가 사람도 되고 나무도 되고 새도 되는 단출한 작품이다.
"컴퓨터 자판 시대라 누가 원고지를 돌아보나요. 글 쓰던 사람에게 원고지는 참 귀한 도구였는데. 원고지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어쨌든 예술로 승화시켜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시화와 함께 이씨가 내놓은 묵화는 봉익필로 그려 눈길을 끈다. 봉익필이란 장닭의 꼬리털로 만든 붓이다. 계우 무심필(鷄羽 無心筆)이라고 한다. 삐죽삐죽 제멋대로인 털 때문에 심성이 거세고 먹을 잘 받아들이지 않아 마음을 비우고 찰나에 붓을 놀려야 한다. 도 닦기 좋은 붓이요, 수양하기에 그만인 그림이다.
"기교나 재능보다 그리는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생겨 먹었느냐에 따라 그림이 나오니 어디 숨을 수도 없이 발가벗는 작품입니다." 이씨는 번개를 잡아채듯 하나 해놓고 나면 정신이 상쾌해진다고 말했다.
이외수씨는 요즈음 장편소설 <장외인간>을 쓰느라 밤낮을 잊고 산다고 했다. 주류에서 삐딱하게 삐져 나와 사는 아웃사이더 얘기다. \"견주고 따지고 그런 것이 어찌 예술 작품이 되겠습니까\"라고 되묻는 그는 종이 속에 먹물 속에 몇 천 번 빠졌다 살아나온 그림과 소설로 세상의 진짜 도적놈이 되겠다고 했다.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