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영화로 오해 마세요” 연극 ‘신 상그레’ 절묘한 기법… 색다른 즐거움
  • 등록일2008-05-14| 작성자 관리자

“영화로 오해 마세요” 연극 ‘신 상그레’ 절묘한 기법… 색다른 즐거움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 초청된 칠레 극단 테아트로 시네마의 '신 상그레'(12∼13일 의정부예술의전당 대극장)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아마 이 작품이 영화적 기법을 연극에 도입했다는 사전정보를 몰랐다면 스크린 뒤에서 배우가 걸어 나올 때까지 상당히 독특한 느낌의 영화를 봤다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두 개의 영상이 투사되는 스크린 사이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듣고, 또 작품의 제작과정을 다룬 영상을 봤을 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함에 경이로움마저 느꼈다.

우리 말로 '피도 없이'로 해석되는 '신 상그레'는 이탈리아 소설가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동명소설을 무대로 옮긴 것. 전쟁 때문에 아버지와 오빠를 잃은 소녀의 평생에 걸친 복수와 치유를 그렸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파란만장한 성장기를 거친 소녀는 결국 가족을 죽인 사람들을 찾아 나서지만 아버지가 전쟁 당시 인체실험을 했던 악랄한 의사였다는 사실에 맞부딪친다. 그리고 소녀의 아버지를 총으로 쐈던 사람들 역시 당시에는 "정당한 심판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무자비한 복수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 평생을 고통스러워한다.

원작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연극은 독재자 피노체트 밑에서 수많은 학생과 노동자들이 살해당한 칠레는 물론이고 전쟁과 독재 때문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진 모든 나라와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누구도 폭력에서 말미암은 증오와 복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힘은 단지 놀라움을 던져주는 새로운 연극미학만이 아니라 바로 전쟁과 인간이란 묵직한 주제에 기대는 바가 크다.

테아트로 시네마는 1987년 독재자 피노체트 밑에서 칠레가 처한 문화적 쇠퇴를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만들어진 단체. 원래 '라 트로파 컴퍼니'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2007년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했다. 기존 연극이 가진 벽을 허물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다. 특히 테크놀로지를 적극 실험하고 활용함으로써 무대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칠레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테아트로 시네마는 지난해 한국에서 신체인형극 '헤멜로스'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알맹이 없이 겉멋만 부리는 실험이 아니라 무대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이슈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이들이 주는 감동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장지영 기자

[국민일보]2008.05.14 18:34/장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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