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3명의 '열린 작업장'
20일 오전 11시 의정부예술의전당 제1전시실.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방 안에 3명의 젊은 작가가 제각각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면바지에 스웨터를 깔끔하게 차려 입은 찰스 장(32)씨는 하얀 캔버스에 열심히 색을 채워 나가고 있다. 바닥에는 집에서 가져다 놓은 인형들이 열을 지어 앉아 있다. "마음이 편안해 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남준(32)씨는 직접 높이 2m의 작업용 사다리를 타고 전시실 벽에 그림들을 붙이더니, 이내 기타를 꺼내 들고 노래를 웅얼거린다. 관객들이 다가와 말을 걸고 사진을 찍어도 스스럼이 없다.
- ▲ 오는 27일까지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아트인생 프로젝트?의정부 명물 찌개에 반한 59인의 작가展’에서 팝아트 작가 찰 스 장(32)씨가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형 아크릴화를 그리고 있다. 김건수 객원기자 kimkahns@chosun.com
이곳은 이번 전시의 백미인 '아카이브 오픈스튜디오'.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고, 관객들이 눈으로 직접 체험하게 하는 '열린 작업장'이다.
자신의 육체를 소재로 몸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반(半)누드 작품들을 그리는 작가 권민경(여·26)씨는 "관객 앞에서 발가벗겨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바로 전시가 의도한 바다. 관객들은 이곳에서 완성된 작품에선 느낄 수 없는 작가 개인의 창작 에너지와 내적 투쟁, 환희를 고스란히 접할 수 있다.
이들 3명의 젊은 작가는 지난 8일부터 매일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꼬박꼬박 '출근'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작가들에게도 소중한 경험이다. 로보트 태권V, 마징가 제트 등 익숙한 캐릭터에 일상의 기호를 덧씌우는 인기 팝아트 작가 찰스 장씨. "주로 밤에만 작업했는데 아침형 인간이 다 됐다"고 했다. 색연필과 크레용을 이용해 다양한 얼굴 모습을 드로잉하는 표현주의 작가 허남준씨는 이곳에서 쏟아낸 작품들만 벌써 140점을 넘었다. "이 공간에선 저 자신이 하나의 작품입니다. 관객들은 저를 바라보고, 제 몸에선 각질이 떨어져 나오듯 그림이 탄생하는 거죠…." 어느새 벽 한 켠을 가득 메운 작품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며 허남준씨가 말했다.
이번 전시회엔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 공간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전시실 인근 야외에서 판화 체험전이 열리고 있다.
◆신진·중견작가 59인 작품 대거 전시·판매
이번 전시가 즐길거리로만 승부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500여㎡의 넓은 원형전시실에선 우리 미술계를 끌고 나가는 젊은 작가 59인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상선 신창용 조문기 하용주 원성원 등 유망한 신진 작가들에, 개별 갤러리 소속 작가 김지민 김은진 박상희가 가세했다. 중견 작가들도 흔쾌히 동참했다. 그 결과, 한 사람만 따로 접하기도 어려운 고산금 김을 김은진 김태헌 류승환 류준화 박형진 이준구 한생곤 등의 작품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전시회의 또 다른 매력은 이 작품들을 현장 구입할 수 있다는 것. 마치 백화점에서 그림을 쇼핑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직원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가격은 10만원에서부터 최고 1200만원까지 다양하다. 회화, 판화, 사진 등 환상적인 느낌의 톡톡 튀는 작품들이 많다. 크기가 작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작품들은 관객들을 위해 따로 전시해 놓았다.
이번 전시의 작가 섭외, 작품 선정, 홍보 등 기획의 전 과정은 큐레이터 이도영씨가 전담했다. 이화여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인사동 '쌈지길' 소속 큐레이터로 활동중인 이씨는 "이렇게 많은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건 국내 최초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으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는 평소 친분이 깊은 이진배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과 천호선 쌈지길 대표가 의기투합해 이뤄졌다. 국제음악극축제를 준비하던 이 사장이 사석에서 "음악도 음악이지만, 의정부 시내 아파트에 그림 한 점씩 걸린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며 전시를 제의하자, 미술 대중화와 신진 작가 육성에 관심이 깊은 천 대표가 이를 흔쾌히 수용했다고 한다. 이진배 사장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의정부예술의전당을 청년 미술의 메카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27일까지 의정부예술의전당 전시실에서 계속된다. 월요일 휴무.
[조선일보] 2008.05.20 22:31/선정민 기자 sunn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