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면서도 아름다운 남성 군무와 비극적 사랑의 2인무가 돋보인 발레 ‘스파르타쿠스’
- 벨라루스 볼쇼이 국립발레단의 ‘스파르타쿠스(Spartacus)’를 보고 -
의정부역에서 예술의 전당을 향해 걷는 길은 매우 신난다. 역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도 있지만 조금 넉넉하게 출발하면 좋은 산책로가 된다. 그리 멀지 않은데다가 공연장에 도착해서 보이는 분수는 의정부 예술의 전당이 축제의 물결임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거리감 때문에 공연을 포기한 사람들은 아마 이 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이들의 공연이 그다지 큰 감동을 전해주진 않았지만, 단 하루의 공연을 위해 먼 곳으로부터 이 곳까지 왔고 그들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가졌음에 감사하다.
조금은 장난기 섞인 얼굴과 안무 때문에 객석의 웃음을 만든 잔인무도한 희화화된 크라소스, 학구풍의 이미지로 정의와 사랑을 위해 민중의 편이 된 반역노예로 독무와 프리기아와의 2인무가 아름다운 스파르타쿠스, 그들은 독무도 좋지만, 그들의 배경이 되는 남성 군무가 매우 힘차면서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들은 춤 갈무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이며 매력적이다.
구소련의 3대 발레단 중의 하나로 원래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소련의 대표적 발레단에게만 부여되었던 명칭인 ‘볼쇼이(Bolshoi :영어 ’Grand‘와 동일)’가 붙은 이 발레단은 소련의 해체된 지금도 널리 알려진 무용단이라고 한다.
모두 3막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두 차례의 쉬는 시간 15분을 포함하여 2시간 30여분을 상연했다. 전체적으로 세 사람의 테마 안무와 그들의 밑그림처럼 긴밀감을 지니고 아름다운 춤을 선물한 남성 군무가 이 공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적 의상과 캐릭터가 지닌 성격에 적합한 안무로 세 사람의 주인공은 전형적인물의 상징이면서 삼각구도를 지닌 지극히 개인적인 대결를 갖는다. 비록 비극적 결말로 끝나지만 시도된 그의 집념은 오래도록 정신세계에 남아있어 슬프지만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춤은 매우 힘차면서도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오케스트라 없이 그저 틀어진 음악(A. Khachaturian)이어서 아쉬웠지만 - 간혹 음악에 춤이 못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각 캐릭터가 가진 성격을 잘 대변해준다. 특히 크라수스의 테마엔 매우 경쾌하면서도 장난기가 섞여있어 안무 또한 강한 이미지와 함께 다소 희화화된 크라소스를 보는 듯하여 매우 귀엽고 발랄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마도 그의 외모가 갖는 특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와의 테마에선 더없이 애잔하고 그 때문에 더욱 비장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정의는 있으나 실현되지 않고,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근접할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신분사회. 그 사회에서 결국 장렬한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스파르타쿠스의 비장함은 선과 악, 정의와 잔혹함의 대결 구도를 명확히 보여주고 보는 이로 하여금 결전의 그 날을 기대하게 한다.
무대는 매우 단순하다. 위에서 내려오는 결투장, 노예시장, 크라소스의 향연장, 스파르타쿠스의 결전장 등과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로마의 철학자 상들이 있을 뿐이다. 춤판은 매우 비좁아 보인다. 그들이 춤을 추기엔 너무 협소하여 군무가 이뤄질 때는 서로 부딪히는 경우도 발생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무대의 특별한 장치 없이도 독무와 함께 돋보이는 군무의 힘찬 기상은 반복적인 동작이 주는 획일성을 떨치고 매우 단정하고 강렬해 보인다.
특별한 조명은 없지만 호라티우스, 플라톤 등의 로마의 고대 철학자의 조각상과 시들이 둘러서있는 곳에 유혈 상황이 올 때마다 내리치는 붉은 조명은 마치 그들이 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라는 듯 하다. 하지만 그것이 주는 위압감은 그리 없다. 그저 말없이 보고만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정의나 이상사회를 웅변하던 철학자들의 이론은 현실적으로 잔인하게 자행되는 유혈사태를 어쩌지 못한고 그저 이론에 불과함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면,
제1막은 전쟁을 일으킨 크라소스의 전제적 폭력상황과 노예시장에서의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지아의 장면이 있다.
폭압적인 우두머리의 상을 지닌 로마의 귀족 크라소스와 병사들의 군무로 시작한다. 그의 꽉 다문 모습은 위협적이기보다 매우 장난스러워 그가 추는 춤에 관객의 웃음이 동반된다. 그래서 질서정연한 그들의 춤은 위압적이진 않다. 하지만 뒤이어 노예시장에 나선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와의 헤어짐, 그 2인무는 매우 부드럽고 아름답다. 물론 노예들의 춤 또한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제2막은 반역 노예들과 힘을 합한 스파르타쿠스가 크라소스를 대항하여 싸운다. 하지만 크라소스의 승리로 프리기아가 크라소스에게 끌려간다. 그의 향연에서 프리기아를 발견한 스파르타쿠스는 그녀와 함께 도망치고 나중에 크라소스와 대결하여 크라소스를 죽일 수 있는 상황까지 갔지만 비겁하게 살기를 애원하는 그를 놓아준다.
여기서는 크라소스의 향연에서 보여지는 춤이 매우 관능적인데, 크라소스가 두 여인과 추는 3인무가 그러하다. 이 때문에 코러스처럼 움직이는 아름다우면서도 힘있는 남성의 군무를 놓치지는 말아야한다. 게다가 한 손으로 프리기아를 들고 추는 춤이나 힘있는 자반뒤집기(?)는 남성의 힘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반면에 스파르타쿠스가 프리기아와 추는 아름다우면서도 애절한 춤은 스파르타쿠스가 그의 한 무릎에 그녀의 허리가 중심이 오도록 하는 장면에선 애처롭기까지 하다.
제 3막에서는 치졸하게 풀려난 것에 복수를 하기위해 음모를 꾸민 크라소스는 그의 군대에게 술과 여흥을 수단으로 전멸시킨다. 마지막에 프리기아는 수많은 전사자들 가운데 죽어있는 스파르타쿠스를 발견하고 흐느낀다.
여기서는 안타까웠던 것은 진혼곡인데 서둘러 끝난 듯한 인상을 받는다. 비록 노예였지만 장렬한 죽음으로 자유를 얻은 스파르타쿠스는 민중의 전형이다. 그를 위한 진혼곡은 어찌 그리 짧은 지.
로마의 원형 콜롯세움. 그 시대를 대표하는 검투 장면, 그 피비린내 나는 현장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그저 노예라는 신분이기에 인권은 없고 심지어 산 채로 수술도 하여 생체실험의 대상으로도 활용되었다는 노예 검투사. 죽지 않기위해 상대를 죽여야하는 그 곳에서 같은 동료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절망감. 매체를 통해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상상력의 폭은 넓었지만 단순한 무대와 협소한 장소가 그들의 기량을 맘껏 펼치기엔 장애가 있지 않았을까 한다.
주체적 인간의 전형으로 자신의 신분에 굴하지 않고 자유와 사랑과 정의를 위해 힘껏 싸운 스파르타쿠스를 보며 과연 그와 같은 인간상은 지금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정리하자면, 로마의 귀족과 노예로 양분화된 대결구도 속에서 그렇게 많은 안무는 없다. 매우 반복적인 음악과 안무가 있어 테마성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크라소스와 그의 군대가 추는 군무의 힘차고 시원스럽지만 장난기 섞인 안무, 스파르타쿠스와 프리기아와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애절한 안무는 스파르타쿠스의 서정적인 내면을 확대하여 표현하려 한 듯 하다. 그가 허리를 한 손으로 받쳐 든다거나 서로의 팔과 다리를 교묘하게 움직여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안무는 매우 비장한 아름다움이다. 물론 스파르타쿠스의 시원스러운 독무 또한 그의 고뇌가 투영된 듯하여 더욱 아름답다.
장소를 상징하는 그림이 무대 배경으로 내려지는 것은 아마도 결투장, 노예시장, 크라소스의 향연장, 감옥 등을 시사할 듯 하다. 특히 붉은 조명은 핏빛 전투를 상기시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것들이 조화롭게 관객에게 다가오진 않는다. 그리하여 비극성은 약하게 전달될 뿐이다.
쉬는 시간 15분 동안 1막에 대한 이야기로 로비가 가득 찼다. 일반인 가운데 어른들은 무용수가 모두 잘생겼다는 이야기와 시원스럽게 뻗는 동작이 멋지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1막의 긴장감은 2막에 가서 고조에 달했는데, 3막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안무가 펼쳐지지 않았나 싶다. 3막 또한 기대했지만, 진혹곡 부분에서 너무나 짧고 쉽게 끝막음을 해버려서 조금은 아쉬웠다.
그들의 숨소리를 무대 가까이 앉아서 듣는 것은 행운이라는 생각과 함께 극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그들이 실수가 더 빠르게 다가온 것에는 좀 바람직하지 않은 자리 같다. 조망하듯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들의 기량을 더 잘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
어느 무용가가 그랬다. 구소련이 무너지면서 최고무용수의 역량이 많이 퇴보되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경제력을 추구하다보니 유명세 있고 탄탄한 실력을 가진 안무가들이 점차 떠나고 있다 하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 음악 : 아람 하차투리안(Aram Khachaturian)
* 안무, 연출, 감독 : 발렌틴 엘리자리예프(Valintin Yelizariev)
* 무대 및 의상 디자인 : 뤼식(Eugen Lysik)
* 주연 : Anton Kravchenko(스파르타쿠스)
Ekaterina Fadeeva(프리기아)
Vitaty Petrovsky(크라수스)